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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출산제, ‘생명 우선’ 논리가 지우는 존엄

by 렛츠7 2026.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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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의도]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 위기 임산부의 익명 출산을 지원하는 ‘보호출산제’가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행되었다. 2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보호출산제의 문제를 환기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기사를 연재한다. 연재를 통해 “위기 임산부”를 단순한 정책 대상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와 사회가 구성한 범주로 파악하고, 보호출산제 역시 중립적 제도가 아니라 특정한 가족 규범과 젠더 질서를 전제하고 작동하는 장치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로써 여성의 재생산권과 아동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보호출산제가 전환되는데 기여하길 바란다.
 
보호출산제, ‘보호’인가 아동유기 조장인가
 
2023년 10월 7일,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다. 230명 출석 의원 중 133명 찬성, 반대 33명, 기권 64명으로 위기 임산부의 익명 출산이 합법화되었다. 여기서 위기 임산부란 “경제적·심리적·신체적 사유로 출산 및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이다.
 
일명 보호출산제로 불리는 이 법은 2024년 7월 19일부터 시행되었다. 정부는 긴급 주거 지원과 의료비 지원 등을 통해 위기 임산부가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하고, 태어난 아동의 생명을 보호하여 국가의 돌봄체계 안에서 안전하게 양육한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그러나 국가는 익명 출산과 친권 포기, 즉 보호출산을 선택한 위기 임산부를 위한 예산을 마련했을 뿐, 정작 임산부가 겪는 경제적·심리적·신체적 어려움을 실질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별도의 지원체계는 마련하지 않았다. 만약 위기 임산부가 친권을 포기하지 않고 양육하기로 선택한다면, 기존 복지체계 안에서 지원을 찾아야 한다. 출산 지원 시설 입소 또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신청, 그리고 모든 임산부에게 지급되는 임신 1회당 100만 원 정도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이미 임신으로 인해 취약한 몸이 된 여성들은 경제적·심리적·신체적 위기까지 떠안으면, 결국 보호출산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를 보여주듯 보호출산을 선택한 위기 임산부는 제도 시행 첫 달 15명에서 16개월 만에 145명으로 늘어났다.
 
위기 임산부가 충분한 정보와 지원을 바탕으로 안전한 임신중단이나 양육을 선택할 수 있는 실질적 정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보호출산을 선택하는 여성과 합법적으로 유기되는 아동의 수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는 한, 보호출산제는 여성의 재생산권을 침해하고 아동의 원가족 분리를 제도적으로 조장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보호출산 도입 뒤의 세력: ‘낙태죄 존치’ 연대
 
보호출산제로 태어난 아동은 “국가 돌봄 체계” 또는 “공적 돌봄 체계” 안에서 보호받는다고 하지만, 이는 아동이 평생 부모에 의해 버려졌다는 서사를 짊어지고 아동보호시설이나 입양가정에서 성장함을 의미한다. “위험한” 어머니와 아기를 영구적으로 분리하고, 장차 재회의 가능성마저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는 보호출산제는 과연 누구에 의해, 어떤 배경 속에서 도입된 것일까.
 
때는 2023년, 이른바 ‘수원 영아 시신 냉장고 유기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0대 친모가 영아 2명을 출산 직후 살해한 뒤 자택 냉장고에 은닉한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정부는 미등록 아동 전수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2,123명의 미등록 아동 중 다수가 사망했음을 확인했다.
 
이를 계기로, 같은 해 6월 국회는 ‘출생통보제’를 통과시켰다. 출생신고를 부모의 의무에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국가에 통보하도록 하는 제도다. 오랫동안 미등록 아동 문제 해결을 요구해 온 시민사회는 이를 환영했다.
 
그러나, 출생통보제 논의가 시작될 무렵부터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출생통보제와 함께 보호출산제를 도입하라’는 주장을 했다. 2022년 7월 4일 「생명을 존중하고 지키는 보호출산제 도입」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하며, 제도 도입 필요성을 적극 제기했다. 이어 출생통보제 도입이 국회에서 확정된 직후인 2023년 7월 3일, 국민의힘 여성의원 19명은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을 열어 보호출산제의 조속한 도입을 촉구했다.
 
비슷한 시기에 전국입양가족연대, 반낙태운동을 주도하는 K프로라이프, 라이프투게더, 성산생명윤리연구소 등 프로라이프(Pro-life, 낙태 반대 진영) 단체들과 일부 기독교 단체들 역시 보호출산제 도입을 촉구하며 힘을 실었다. 이들은 위기 임산부의 익명 출산을 허용함으로써 영아 유기와 살해를 막고 생명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 번역 출간된 책 『입양으로 아기를 잃은 50만 명의 여성들』(데이비드 하우, 필리다 소브리지, 다이애나 히닝스 공저. 안토니아스) 북토크 현장. 2025년 12월 5일. 왼쪽부터 책의 공동번역‧감수자인 이태인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전세희 ‘더나은 입양을 실천하는 입양부모 네트워크’ 대표, 노혜련 숭실대학교 명예교수, 조소연 사회복지연구소 마실 대표, 권희정 미혼모 아카이빙과 권익옹호 연구소장의 모습. (사진: 미혼모 아카이빙과 권익옹호 연구소 제공)    

미혼모, 입양인, 보호시설 퇴소인…당사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반면, 성·재생산권과 아동권을 지지하는 시민단체들과 미혼모, 입양인, 보호시설 퇴소인 등 당사자들로 조직된 단체들은 보호출산제 도입에 반대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자회견, 정책토론회를 통해 보호출산제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아동의 출생정보 접근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그리고 국가가 위기 임산부 지원 책임을 회피한 채 아동 유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아동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찬성 논리 앞에서 반대 진영의 목소리는 힘을 얻지 못했다. 고아권익연대는 김미애 의원실에 “보호아동의 생명권과 알 권리를 모두 보장하고, 부모가 피치못할 사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더라도 서로 소통할 기회를 보장하는 면접교섭권 도입” 등을 요구하는 수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윤석열 정부가 설치한 약자와의동행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미애 의원은 “다른 의원을 찾아가 보라며 번번히 거절했다”.(프레시안 2024년 7월 18일자 “윤석열은 무지, 김미애는 무시” 기사 인용)
 
보호출산제 도입에 반대했던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당시 상황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아무리 법 조항의 문제점과 인권침해 가능성을 지적하며 반대 의견을 피력해도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논리를 이길 수가 없었어요.”
 
결국 2024년 7월 보호출산제가 시행되었다. 정부는 보호출산은 모든 조치가 이루어진 뒤에 선택되는 ‘최후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시행 이후 보호출산을 선택한 위기 임산부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2024년 윤석열 정부는 보호출산제를 대표 발의한 김미애 의원에게 “신생아의 생명권 및 산모의 자기결정권을 조화롭게 보호했다”는 평가와 함께 올해의 입법상 대상을 수여했다.
 

위기 임산부와 그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처럼 보호출산제 도입 배경에는 생명을 단지 ‘살아있음’으로 이해하는 정치·종교 세력과 이를 지지하는 일부 입양부모들로 구성된 친입양 운동 집단이 자리하고 있다. 법과 제도를 만들고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며 입양을 통해 아동의 삶에 개입하는 주체들로, 우리 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이들은 자신을 보호자이자 구원자의 위치에 세우지만, 정작 ‘보호’와 ‘구원’의 대상이 된 여성은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을 국가에 내어주고, ‘구원된’ 아동은 출생의 정보와 서사를 삭제당한 채 ‘단지 생명’으로 축소된다. 이들이 바로 아감벤이 말한 ‘벌거벗은 생명’들이다. 삶의 서사와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고 인간의 생명을 ‘단지 살아있는 상태’로 축소시키는 보호출산제는 빈곤한 여성과 아동에게 가해지는 또 다른 방식의 배제이자 폭력이 될 수 있다.
 
미셸 푸코는 과거 군주는 백성을 죽이거나 살릴 권리를 가졌다면, 근대 이후 국가는 국민은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두는 생명권력을 행사한다고 보았다. 푸코의 통찰을 21세기에 보호출산제가 작동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도 목격하고 있다.
 
위기 임산부와 그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보호와 익명, 그리고 구원의 서사가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몸과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다시 말해 아감벤이 구분한 단순한 생물학적 생명(조에 zoē)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삶으로서의 생명(비오스, bios)이다. 이를 위해서는 안전한 임신중단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와 상담, 안전한 출산과 안정적인 양육을 가능하게 하는 실질적 지원, 그리고 누구도 임신과 출산 때문에 배제되지 않도록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이 우선 구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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